호남선 신흥리, 학다리, 연산역급수탑...첨성대가 원형
호남선 철도급수탑으로 축조되어 현존하는 것은 3개로 논산 연산역급수탑, 장성 신흥리역급수탑, 함평 학다리역급수탑이다. 세 개의 급수탑 모두 상부로 갈수록 면적이 줄어드는 구조를 보인다.
이러한 석조 원형탑은 정교한 화강석 축조기술이 집약되는데 신라시대에 만든 경주 첨성대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기능으로 인해 첨성대와 급수탑의 상부 구조는 약간 다르다. 급수탑은 상부에 수 십t의 물탱크를 올려야 하는 구조적인 하중 문제로 서서히 수렴되는 직선 구조를 보이고, 첨성대는 상부 구조물이 없어 멋을 한껏 내어 오므라드는 곡선을 보인다.
전남 장성 신흥리역급수탑은 호남선이 처음 개통한 시점인 1914년 1월 1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유서 깊은 역에 세워졌다. 북일면사무소가 있는 면 중심지의 마을이 신흥리인지라, 역 이름도 그렇게 부여되었다.
차량 교통이 불편했던 1980년대 초반까지, 주민들이 외지로 나갈 땐 거의 이 역을 이용했었다. 그러나 선로가 단선이고, 익산역 이남의 뜸한 배차 간격으로 이용객이 급속하게 감소되었다.
설상가상으로 1980년 초 호남선 복선화로 인한 선형 개선을 위해, 역이 1.4km 떨어진 개천 너머로 이전하게 되었고 역 이름은 신흥리역, 역사(驛舍) 입지는 오산리가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호남선의 복선화로 속도가 빨라지고 수송량은 늘었지만 정작 열차 편수 부족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다. 거기다 이전한 곳은 면소재지에서 멀고 논밭과 야산뿐인 허허벌판이라 승객이 더욱 감소하면서 1995년 4월, 무 배차 간이역으로 격하되는 지경이 되었다.
결국 통일호가 폐지된 직후인 2004년 7월부터 여객 취급이 중지되었고 2006년 6월 23일에 폐역이 되며 100년 가까이 된 신흥리역은 사라지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함평을 지나는 호남선은 선로 설계상 도심을 지나지 않고 남쪽으로 6km나 떨어진 학교면소재지에 학교역(鶴橋驛)이 설치되었다. 1913년부터 운영되었고 2000년 초 호남선복선화 사업으로 인해 선형이 개량되며 학교역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 새로운 역사가 확정되었다.
그로인해 폐역이 되었고 역명 또한 함평역으로 개칭되는 수모를 당한다. 지금은 철도시설 중 유일하게 화강암 급수탑만이 홀로 면 소재지를 지켜, 근대기 첨단 육상교통인 철도노선과 학교역이 있었다고 증명할 뿐이다.
일제강점기 도로가 미비하고 차량이 귀하던 시절, 함평군민들은 철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어 군소재지에서 6km나 외떨어진 학교역까지 대부분 걸어서 오갔다.
이에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한 함평궤도주식회사가 조선총독부로부터 호남선 학교역에서 함평 간 6.1㎞의 사설철도를 부설하고, 20년간 영업을 하는 조건으로 허가를 받았다. 공사 시작 2년만인 1927년 1월 개통시켜 영업을 시작했다.
우리나라 철도선로는 1,435㎜의 표준궤간(레일의 너비)과 762㎜의 협궤궤간이 있었고, 함평궤도는 그 중간인 1067㎜였다. 함평궤도의 특이한 점은 당시에 흔한 증기기관차나 전기동차가 아닌, 등유연료를 사용하는 한국최초의 궤도 노선이었다.
영업 당시에는 경유동력차 3량과 객차 3량, 5톤 화차 4량을 보유해 일일 9번을 왕복했다고 한다. 그러나 수 십 년 사용한 동차가 노후화되고 이용객이 급감하자 1960년 사업을 종료해 철도사에서 유일했던 경유동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전재홍, 상명대대학원 사진학과 졸업(석사), 한남대 대학원 건축공학과 졸업(박사), 조선일보 기자, 대전일보 사진부장, 중부대 사진영상과, 한남대 예술문화학과 겸임교수, 2024 대전국제사진축제 총감독, 이메일 : docui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