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황제 동상, 교통민원에 밀려 철거된다
순종황제 동상, 교통민원에 밀려 철거된다
  • 유태희
  • 승인 2024.04.21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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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유태희 세종시장 문화특보, 달성공원 앞 순종황제 동상 철거 '유감'
단순 철거보다 사랑받고 더 의미있는 곳에 기증..."역사 왜곡은 잘 보아야..."
대구 달성공원 앞 순종황제 동상 사진 출처 : 대구 중구청

며칠 전 대구광역시에서 지난 2017년 달성공원 앞에 건립돼 역사 왜곡 논란과 함께 지역민들의 외면을 받아온 '순종 황제 동상'이 마침내 철거된다는 기사가 언론에 떠올랐다. 대구 중구청은 지난 17일 공공조형물 심의위원회를 열어 위원 전원 찬성으로 순종황제 동상을 22일 철거하기로 한 것이다. 

대구시 중구 관계자는 "지역 주민들과 시장 상인들의 교통 혼잡 민원이 많았다"며 "교통 혼잡 문제와 역사 논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 철거를 결정했다"고 말한 것은 자존심 강한 대구시민을 모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구시민은 일본의 역사왜곡을 알면서도 민원이라는 굴레를 씌여 그 시대의 잘못된 역사왜곡에 동조했다는 오해를 해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며 국사편찬위원장을 역임한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역사왜곡은 말로 다하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우리가 알던 ‘매국노 고종’도 그렇다. 흔히 대한제국과 고종 황제는 그저 ‘무기력한 나라, 무능한 군주’로만 알고 있다. 사실 역사 시간에도 그렇게 배웠다. 

그러나 30년째 대한제국 역사를 연구 중인 서울대 이태진 교수는 “그건 철저히 일제 식민사학의 관점이며 역사왜곡이며, 우리도 모르게 거기에 젖어 있었다”고 지적한다. 대한제국을 일제가 무눙한 나라로 왜곡한 것은 “식민통치의 합리화를 위해서였다. 고종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기 전에 대한제국의 근대화는 자력으로 이미 진행 중이었기에 일제는 그걸 부인해야 했다. 

조선이 괜찮은 나라였다면 식민지배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래서 ‘망국책임론’이란 프레임을 씌웠다.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고종 정부의 무능함, 둘째는 유교 사상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는 것이다. 구시대 사상인 유교에 의해 다스려지는 나라는 야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게 식민주의 역사학의 가장 큰 굴레라고 한 바 있다.

또한 고종이 헤이그특사에 전한 마지막 말 "내가 살해돼도, 너희는 특명을 다하라. 대한제국의 독립주권을 찾아라“를 생각해보면 어떠하였을까?

우리는 이로써 우리는 고종과 순종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새로이 해야한다. 대한민국의 뿌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그리고 대한제국이기 때문이다. 국호, 태극기, 애국가, 수많은 국가들과의 외교관계는 대한제국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대한제국이 1910년에 망했다라는 개념보다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이어졌다가 대한민국으로 법통을 이었다고 보는 역사관이 옳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 제8조에도 “황실을 우대한다”라는 입헌군주제(영국, 일본, 태국같이 왕실은 상징적으로 존재하고 정치는 국민의 대표 국회가 책임지는 정치체제)의 기본을 닦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5월 3일 독일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기자가 순종(純宗)을 인터뷰한 기사도 실려 있다. '오늘의 서울, 황제를 만나다'라는 제목의 이 기사에서 독일 기자는 순종에 대해 "80세 정도의 깡마르고 햇빛을 보지 않은 얼굴의 노인이었다. 황제는 그저 아편을 피우거나 정원을 가꾸는 일로 소일하고 있다"고 묘사했다. 인터뷰 당시 순종은 50세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니다. 그후 마지막 날에 순종황제는 ‘한 목숨을 겨우 보존한 짐은 병합 인준은 강린(姜麟)이 역신의 무리(이완용 일파)와 더불어 제멋대로 선포한 것이요, 다 나의 한 바가 아니다. 오즉 나를 유페하고 나를 협박하여 나로 하여금 명백히 말을 할 수 없게 한 것으로 내가 한 것이 아니니 고금에 이런 도리가 있으리요. 나, 구차히 살며 죽지 못하며 종사에 죄인이 되고 2천만 국민의 죄인이 되었으니 한 목숨 꺼지지 않은 한 잠시도 이를 잊을 수 없는지라, 지금 내병이 위중하니 한 마디 말을 하지 않고 죽으면 짐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리라. 여러분들이여 노력하여 광복하라. 짐의 혼백이 명명한 가운데 여러분들을 도우리라.”라는 마지막 유언을 ’미주 신한일보에 사신 조정구‘를 통해 기재하였다.

역사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은 우리에게 역사 서술의 동기와 영향력, 사실과 편견 사이의 구분, 그리고 역사적 인물들의 복잡성 및 의도 등에 대해 생각도록 전문연구자들과의 소통의 기회가 제공해 주어야한다. 대구시는 당시 순종황제가 대구를 방문하였을 때 일본 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동상은 조선왕실 최고의 예복 대례복을 입고 있기 때문에 역사왜곡이라고 한다. 

그러면 일본 제복을 입은 순종황제 동상을 건립해야 역사왜곡이 아닐까? 순종황제 동상은 곧 철거되고 도로와 정비공사 등 토목사업이 이루어진다고 하니 지역 토호세력과 지역 정치인들의 결탁이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든다.

우리는 순종황제 ‘이척’이라는 한 인물에 대해 기리는 것이 아니다. 세계 역사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긴 왕실을 유지한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이라는 민족적 상징성과 자존심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것이 일제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었는데, 당시 국가의 상징 왕실의 임금을 관광상품화를 위해 필요할 때는 국민혈세 70억을 들여 짓고, 이제는 토목공사가 필요하다고 4억을 들여 혈세낭비를 해가며 철거하고 분해한다고 한다. 그럴바엔 순종황제가 사셨던 창덕궁 희정당, 혹은 조선왕릉 유릉(남양주시 소재 순종황제릉) 앞 넓은 광장 등 순종황제의 동상이 사랑받고 의미가 더 있는 곳에 기증설치한다면 더 아름다운 일이 되지 않을까?

오늘 다시 나 자신도 깨닫는다. 역사의 편향과 진실을 탐구하는 것이 주권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책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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